이는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보이부지』에 적힌 한 편의 이야기입니다.
보이차 세계에서 역사를 말하는 이는 많지만, 대개는 ‘전설’입니다. 처순호가 말할 수 있는 것은 1839년의 품평, 친필 금편액, 빼앗겼다가 되찾은 상표, 그리고 처즈제의 손에 있는 세 닢의 ‘도광통보’입니다.
도성의 품평, 원명원에서의 한 잔
도성에서 최고 수준의 차 품평회가 열렸습니다. 처순라이는 햇차·숙성차·차고를 들고 상경해 예선·본선·전시를 거쳐, 원명원 모란대 최종 품평에서 도광제와 신하들의 한결같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맑고 깊으며 진하고, 심신에 스미고 단맛의 여운이 길다 — 차 중의 서품(瑞品)이라. — 도광제
그 자리에서 상호 ‘처순호’를 내리고 진사 직위와 종4품 관직을 더하였으며, 어좌에서 ‘서공천조’ 네 글자를 친히 썼습니다. 내무부 대신 위신이 직접 윈난으로 가 편액 제작을 감독하고, 차마고도의 시원인 이우진 처씨 댁으로 보냈습니다. 처순라이는 편액을 맞는 의식을 열어 이레 밤낮을 기렸습니다.
세 닢의 ‘도광통보’, 오늘까지 이어지다
편액을 하사받은 것을 기념해, 처순라이는 ‘도광통보’ 세 닢을 사 세 아들에게 하나씩 주었습니다. 이 세 닢은 지금도 처씨 집안에 전해져 중국 차 문화의 실물 증거가 되었습니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처씨 가문이 대대로 건네는 구체적인 물건입니다.
빼앗긴 상표를, 되찾다.
5대 계승자 처즈제는 상표를 선점당하는 풍파를 겪은 뒤, 브랜드를 되찾아 처순호를 다시 일으켰습니다. 그의 신념은 ‘성실이 보이차의 생명’ — 이것이 이 세대 처순호의 첫마디입니다. 오늘의 처순호는 옛 어용 공차의 기개를 되살리고자 양보다 질을 추구하며, ‘역사 속 보이 공차를 되살린다’는 장인 정신을 온전히 따릅니다.
고궁에는 차병 한 개, 이우 고택에는 편액 한 폭.
고궁박물원은 처순호 차병을 공차로 소장·전시합니다. 이우 고택과 ‘서공천조’ 금편액은 국가 중점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의 봄차는 지금도 처즈제가 직접 살피며 옛 방식으로 만듭니다.